용인의 三城, 처인성-할미산성-석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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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三城, 처인성-할미산성-석성산성
  • 윤혜란 기자
  • 승인 2010.10.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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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성은 처인성, 할미산성, 석성산성 등 세 곳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처인성은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성으로 경기도 기념물 제44호이다.

할미산성은 경기도 기념물 제215호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와 가실리, 기흥구 동백동의 경계에 위치한 할미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남쪽으로 석성산 정상부와 석성산성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있다.

석성산성은 처인구 유방동, 역북동, 삼가동과 기흥구 구성동과 중동, 포곡읍 마성리에 접해있는 석성산(해발 472m)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 처인·할미산성, 용인지명 600주년 앞두고 정비 추진

용인시는 오는 2014년 용인 지명 600주년을 앞두고 처인성과 할미산성의  정비 사업을 추진한다. 정비 후 주변 유적 및 관광자원과 연계해 역사·문화·교육적 가치를 극대화한 테마관광지로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처인성의 경우 금년 4월에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2012년까지 정비하고, 할미산성은 지난해 9월에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완료했으며 2014년까지 연차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시는 할미산성의 경우 정비 완료 후 관계기관 협의 및 안전성 진단 등을 거쳐 석성산성과 연계하는 생태다리를 놓아서 두 산성을 잇고 동물들이나 산행객들이 할미산성과 석성산성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도 검토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용인의 도시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처인성, 할미산성, 석성산성을 중심으로 한 용인의 역사와 정체성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처인·할미산성에 대해 고증과 연구 등에 입각한 제대로 된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교육·체험 및 문화관광의 장으로 활용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처인성 - 야외전시장·광장 등 조성, 처인승첩 교육·체험장으로

처인성은 고려시대 수주에 속해있던 처인부곡의 토성이다. 고려 군창(軍倉)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9년 처인성 대첩 기념비가 준공되었다. 비문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최영희가 짓고, 글씨는 김기승이 썼다.

처인성은 일찍부터 교통이 발달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 1232년(고종 19년) 몽고 제2차 침입시 고려 승장 김윤후가 격전 끝에 몽골 장군 살리타를 사살해 대몽항쟁의 결정적 승기를 잡은 전승지로 유명하다.

처인성에서 마주보이는 북쪽 산기슭은 살리타이가 승장 김윤후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사장(射場, 死將)터’로 불린다.

용인시의 정비계획에 따르면 처인성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에 걸쳐 1차년에 주차시설 확보를 시작으로 2차년에는 광장 , 야외전시장, 3차년도에는 산책로, 성벽경관조명 설치 등 보호구역 전체 정비에 들어간다.

'처인승첩 교육.체험의 장'으로 개발하게 되며 처인성 문화제와도 연계 활용해 지역 경제 및 문화 발전에 기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성 내·외부 보행로도 정비해 방문객 산책로나 유적탐방로로 사용하고, 성벽을 따라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도 유적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할미산성 - 역사성 회복 중점, 성벽 정비.내부 탐방로 등 구축

할미산성은 할미산(해발 349.3m) 정상부와 남쪽 능선에 축조된 651m의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마고할멈이 외침을 막기 위해 앞치마에 돌을 모아 하룻밤 사이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마고성이라고도 한다.

할미산성은 2004년에 시굴조사를 통해 축성의 주체가 신라임이 밝혀졌다. 신라시대의 축조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유물로 대부장경호, 고배 등 토기류와 가위 등 철제류가 출토되는 등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초 신라 진흥왕의 북진과 비슷한 시기에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약진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할미산성 종합정비를 위해 34억원의 예산을 들여 총7만8066㎡의 구역 정비를 추진한다.

현재 성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기본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있어 원형 유지를 기본으로 해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유적 정비로는 총651m길이의 성벽 정비를 중심으로 하며 성곽 내측으로 2~5m 이격해 탐방로를 구축하고 목재계단·데크 등을 설치한다.

원형 보존구간에는 부분적인 보수정비, 성벽 잔존구간에는 성벽 안정화 처리로 정비하며 유실구간에는 이용율이 높은 구간에 한해 부분적으로 복원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문지, 저수시설, 수구 등 성내 유적의 경우 추정터에 대한 발굴조사 등 정밀 학술조사를 거쳐 연차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주차장은 동백중학교에서 할미산성간 등산로 입구에 4562㎡규모로 조성한다.

● 석성산성 - 15세기 봉수 운영 추정

석성산성은 용인의 진산(眞山)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석성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으며 보개산성으로도 불린다.

석성산 일출은 용인팔경 가운데 제1경에 해당되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면 많은 시민들이 일출을 보러 산마루에 오른다.

정상에 올라서면 용인 동백지구와 영동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석성산성은 기본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지 않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용인 지역에서 규모가 큰 편인 산성으로 인근의 할미산성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다. 석성산성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부터 나타났다.

조선 이전 시기부터 산성으로 경영되다가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군사시설인 봉수가 설치되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5세기 말부터 퇴락하기 시작하였으나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잠깐 다시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할미산성이 신라에 의해 사용된 이후 산성으로 효용가치를 상실한 반면에, 석성산성은 성내에 산포하는 유물의 현황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교통로의 요충이었기 때문에 봉수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향후 석성산성 봉수대 복원 등을 통해 할미산성과 석성산성 봉수대를 잇는 생태통로가 설치된다면 산림휴양을 통한 시민 건강증진 및 용인 산성의 소통성을 회복하는 교육장소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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