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쌀이 넘쳐나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해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역 농협까지 이미 수매한 쌀을 농민들에게 할당해 직접 판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일부 지역농협은 할당량을 판매하지 못하면 해당 가구의 올 수매량을 줄이겠다고 통보, 농민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
25일 경기지역 농민과 농협에 따르면 안성에 사는 최모(50)씨는 최근 농협으로부터 "재고량이 많아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지난해 최씨가 수매한 쌀 가운데 일부인 20㎏짜리 쌀 500포대를 판매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할당량을 모두 판매하지 못하면 올 수매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들어 걱정이 커지고 있다.
최씨는 나름대로 판매에 나섰다 한계를 느끼고 발만 동동 구르다 타지에 사는 형제와 친척에게 쌀 판매를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최씨의 동생은 집 근처 식당 등을 찾아다니며 시중가격보다 20~30% 낮은 가격에 쌀 구매를 요청했으나 기존 거래처가 있어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안성지역에서는 농협과 RPC(미곡종합처리장)가 작년에 수매한 2009년산 쌀 3만1천587t 가운데 지난달 말 현재 42.7% 1만3천502t이 재고로 남아 있다.
소비자 가격도 작년에 20㎏ 기준 1포대가 4만3천500원에서 올해 3만7천100원으로 14.7% 6천400원이 하락한 상태다.
농민들이 이같이 쌀값 하락에 재고 쌀 판매 할당까지 받아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여주.이천지역 쌀 생산 농민들도 농협으로부터 지난해 수매한 쌀 가운데 재고 쌀 판매를 할당받았다.
여주군에 사는 농민 강모(57)씨는 "지난해 수매량을 기준으로 20㎏들이 쌀 40포대를 판매하라는 전화를 농협으로부터 받았다"며 "어디 가서 쌀을 팔아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이천 장호원에 사는 장모(62)씨 역시 "농협에서 20㎏짜리 쌀 200포대를 할당받았으나 지금까지 3포대밖에 못 팔았다"며 "팔 방법이 없어 지금은 판매를 아예 포기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농협이 할당량을 모두 못 팔면 올해부터 계약재배를 통한 수매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계약재배가 아니고 일반인과 같이 수매를 하면 40㎏ 벼 한 가마 수매가가 2만원 가량 낮아진다"고 덧붙였다.
농민들은 재고 쌀 할당량을 소화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당초 농협 수매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쌀을 판매한 뒤 차액은 자비로 마련, 농협에 반환하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마저 가중되고 있다.
농민들은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개인이 그 많은 쌀을 판매하라는 것인지 답답하다"며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한 벼 50만2천t 가운데 농협 등에서 수매한 21만1천t 중 36% 7만7천t이 남아 있다.
이천의 한 지역농협 관계자는 "농협에서도 재고량을 모두 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직원과 조합원들에게 판매량을 할당했다"며 "재고량이 해소 안 되면 올가을에는 수매량을 줄이거나 수매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