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남양막걸리', 쉼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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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남양막걸리', 쉼터가 없다
  • 정대영 기자
  • 승인 2009.11.14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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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본 사람들 좋다는 것 다 알지만 존폐 기로

△웰빙바람 식음료 문화 컨텐츠- 막걸리

'골목에서 골목으로/거기 조그만 주막집./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詩人의 보람인 것을…/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순하디 순하기 마련인가,/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몽롱하다는 것은 莊嚴하다./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밤은 깊어가는데,'
-천상병 시, '酒幕에서'중

1993년 세상을 졸업(?)한 술꾼이자 떠돌이 괴짜시인 천상병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60-70년대 서민들이 즐겨 마셨던 술은 탁배기, 탁주배기, 젓내기술, 대포, 왕대포 등으로 불리는 막걸리다. 요즘 원료 고급화와 주조 과정의 위생개선, 쌀소비 촉진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식음료를 통한 새 문화 컨텐츠의 발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걸리와 콩나물무침보다는 생맥주와 통닭에 익숙한 나이 탓인지 모르겠다. 최근 불어닥친 막걸리 열풍은 개인적으로 어린시절 시골에 가면 술을 좋아하던 큰아버지 모셔오라는 어른들 말씀에 들렸던 마을 술도가의 시큼한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또한 막걸이에 대한 추억으로 시골 양조장을 찾고 싶어졌다. 경기문화재단에 전화를 넣어보고 지자체 관련부서, 세무서, 지역문화원 등에 문의했지만 자료나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시 공보실에서 확인해준 양조장 전화번호 하나로 화성시의 소규모 양조장을 찾아나섰다.

물론 화성시 관내에는 전통주 시장의 강자 배상면주가의 창업주 딸이 대표로 있는 최첨단 시설의 현대식 양조장이 있다. 하지만 딱히 그곳에서 얼마나 유년기 추억의 냄새에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전통에 빛나는 남양탁주 청강 생약주

수원역에서 발안쪽 지하도를 빠져나와 고색동, 오목천동을 지나고 313번 지방도에서 20여분을 달려 만나는 남양교차로ㆍ화성물꽃마을ㆍ정원채 고가 등의 이정표가 2차선 샛길 하나를 가리킨다. 그 길로 30-40m 들어가니 '전통에 빛나는 남양탁주 청강 생약주'라는 상호의 집채가 길가에 보인다. 야트막한 단층 건물은 적당한 크기의 마당에 세월의 더께를 제법 앉힌 모습이다.

"일반인들이 아는 것 하고 업주로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많이 다릅니다. 모두 국순당이나 서울탁주, 포천 이동막걸리 등 지명도 있고 선도적인 제조장들 이야기지요. 그런 기업형 말고 주변 유휴 인력을 이용하는 생업형 업체들은 오히려 이런 상황이 더 위협적으로 보일 뿐입니다"

'먹어본 사람들은 좋다는 것 다 안다'고 입소문이 난 남양막걸리 박장우(61) 사장은 쌀 소비 일환으로 북치고 장구치는 정부의 막걸리 사랑(?)이 적이 부담스런 모습이다. 갑작스런 막걸리 돌풍이 질적 고급화가 아닌 너도나도 막걸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양적 향상만 부채질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내년부터는 전국단위의 진로 백화 두산이나 중견주조사들이 막걸리 사업에 참여 안 한다는 보장을 못하지요. 그 진위여부를 떠나 이미 몇몇 제조사에서 탁주 개발팀이 발족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그네들이 덤비면 우리 같은 업체들은 대부분 도태된다고 봐야죠"

원래 약주나 청주를 거르고 남은 찌게미에 물을 섞어 '막걸렀다'하여 이름붙였고 70년대 중반까지 전체 주류중 70%대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국민주였던 막걸리.

80년대 들어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른 기호도 변화와 소주ㆍ맥주의 급성장, 저질주의 양산 등으로 급격히 추락했다 2000년 판매제한지역 폐지 등 제도개선과 최근 발표된 '우리 술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등으로 비상의 날개짓을 꿈꾸고 있다.

△전통은 잇고 있는데 기록은 전무한 남양막걸리

     
막걸리는 주세법상 탁주류에 속한다. 곡류 기타 전분이 함유된 물료 또는 전분당과 코지 및 물을 원료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하지 아니하고 혼탁하게 제성한 것, 제성과정에서 법률이 정하는 물료를 첨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첨가제는 아스파탐, 스테비오사이드, 젖산, 구연산, 아미노산류이며 알코올 농도는 6도 이상이다. 

탁주 제조에는 쌀 밀가루 옥수수 보리 고구마 전분당 등이 원료로 사용된다. 1965년 식량자급을 위해 쌀로 술빚는 것을 전면금지하는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대부분 밀가루를 사용했고 90년대 이후 다시 쌀 주조가 가능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다만 규모를 갖춘 몇몇 양조장을 제외한 대부분이 원가부담으로 수입쌀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농번기에 반식량 구실을 톡톡히 했던 막걸리는 70년대만 해도 어지간한 동네에는 양조장이 하나쯤 있을 정도로 흔했다. 현재 40-50대 가장이라면 양은주전자에 철철 넘치는 막걸리 심부름을 한두번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뽀얀 고유의 색깔과 알싸한 향취로 '꼴깍' 침샘을 자극하던 토속막걸리.

"저물녘 힘들게 일을 마치면 컬컬해진 목에 한 잔 쭉 들이키는 거죠. 남양막걸리는 밀술입니다. 쌀술이 맑고 담백한 맛이라면 밀술은 텁텁하면서 향이 좋습니다. 자기 주관적이지만 술은 밀술입니다. 막걸리의 미세한 가루를 혀끝으로 음미하면서 마시면 훨씬 더 맛있지요. 밀가루가 많이 든 막걸리일수록 미세한 가루가 많습니다"

박장우 사장은 70년부터 주류 판매업에 종사했다. 직접 양조장을 운영하고 싶어 폐업자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화성으로 들어왔다. 수십년 남양막걸리를 운영한 정모 사장으로부터 이곳을 인수하고 90년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남양막걸리의 세번째 인수자이고 양조장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뿐, 이외의 배경이나 상황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제조공정은 대략 일정하게 끊어지지는 않지만 12일에서 15일 사이로 누룩은 전문업체에서 가져오고 별도의 유통망 없이 직접 인근 송산 남양 비봉 매송지역의 할인점과 각 점포로 배달된다. 주력 1.5ℓ 15병 박스를 매일 30짝에서 50짝 정도 판매하고 있는데, 죽은 술이 아니라 효모가 살아 있는 반제품 형태로 포장기술이 좋아져도 유통기한은 열흘이다. 61년 양조장 소재지의 시읍면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위수지역을 설정했던 지역면허제는 당시 열악한 도로사정에 금세 변질되는 막걸리의 특성을 감안한 조치이기도 했다.

인근 남양동의 농협하나로마트와 한일마트에서 남양막걸리를 찾았다. 하나로마트는 지역정서상 남양막걸리만 취급했고 한일마트는 포천이동막걸리 서울탁주 남양막걸리를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하나로마트는 15개들이 3짝, 한일마트는 10개들이 5짝을 매일 소화하는데, 다양한 제품을 구비한 한일마트는 남양막걸리가 다른 막걸리와 비교해 서너배 이상 팔린다고 귀뜸한다. 맛 하나로 승부하는 남양막걸리의 속내를 지역 소비자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살아 있어 정성이 빠지면 맛이 없는 막걸리

"2000년 이전까지 관내에 20개 정도의 양조장이 있었지만 대부분 지역적 한계와 업주의 노령화로 폐업했습니다. 현재 소규모 양조장 2개가 명맥을 유지하는데, 40년간 부친에 이어 운영하던 화성탁주를 천광인 전 화성문화원장이 10년전 제게 넘겼습니다. 인력관리도 그렇고 도저히 못하겠으니 유지하다 통폐합하라는 말과 함께였죠. 욕심이나 장래성으로 인수한 것은 아닙니다"

박 사장은 건강이 안 좋아 최근 신장수술을 몇 차례했다. 대를 잇고 싶어 이쪽으로 공부를 시켰지만 고려대에서 미생물 관련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아들 진섭(30) 씨는 '탁주나 식품류는 학술상 한계가 있다. 진로를 바꾸겠다'며 대체 에너지쪽으로 돌아섰다고 말한다. 돈벌이가 안되니 계승을 하겠다는 젊은이가 없다. 전국적으로 2000곳이 있으나 95%는 흔히 이야기해서 동네 수퍼보다 매출이 떨어지는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니 결국 결국 사장되지 않겠냐고 그는 덧붙인다.

주거니 받거니 기쁨과 슬픔을 교차하는 술잔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들어 있다. 낙후된 시설과 고령화된 인력, 시간에 쫓겨 사라져간 전국의 많은 양조장처럼 언젠가 남양양조장의 모습도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 막걸리 익어가는 냄새가 가득한 숙성실에서 박 사장의 사진을 찍었다. 찰랑찰랑 항아리목을 간지럽히는 막걸리 내음이 진동하는 양조장. 찾은 날이 주말이어서인지 '막걸리 좀 주세요'라며 지역주민들 몇몇이 막걸리를 사기 위해 직접 양조장을 찾았다.  


 △지원 및 지역특화방안 모색할 시기


물론 그는 알고 있다. 365ℓ들이 항아리 몇 개에 한병 한병 수작업으로 병립과정을 거치면서 얼마나 멀리 판매할 수 있을까? 제품의 균일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 구전으로 좋다는 평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반적으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위생적 제조시설을 갖춰 소비지향적 제품개발에 주력하면 살아남는다. 명맥을 이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도태된다 하기 이전에 스스로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생계형 업체는 규모화 자체가 부담스럽다. 사업 추진에 필수적인 판매 유통망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게 아니듯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모든 것이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중소기업의 고유업종을 보호 육성하고 아닌 것은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듯 양조장도 너무 난립시키면 좋지 않다는 속내를 그는 말한다.

"발효 정도에 따라 술맛은 천차만별입니다. 자동화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보다 투박한 재래식 막걸리가 훨씬 깊은 맛을 냅니다. 막걸리는 살아 있어 정성이 빠지면 맛이 없습니다. 몇천 ℓ들이나 몇만 ℓ들이 스텐인레스 발효탱크에서 빚어지는 막걸리가 100여년 가까이 술을 빚은 항아리와 같을 수는 없겠지요. 지역 곳곳에 숨어있고 위생 관리는 떨어지지만 맛 하나로 승부하는 명주 막걸리들이 세상밖으로 나오도록 현재의 막걸리 열풍이 진행되었음 합니다"
 
그리고보니 이곳 숙성실에 있는 19개의 365ℓ들이 항아리 표면에는 연월일을 계산하는 기년법이 62년 서기로 통일되기 이전의 단기 문자로 새겨져 있다. 역사와 전통이 우러나오는 흔적에 다름아니었다. 

p.s. 시골 막걸리의 회생방안을 들어보자고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자색막걸리를 특화시킨 강희윤(36) 박사를 만났다. 소규모 양조장으로 전통적인 항아리 술을 빚고 있다면 그걸 특화시켜 체험학습 등 관광상품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인근 기아자동차연구소와 함께 음주문화 캠페인을 벌여 기아차 견학자들이 양조장을 함께 둘러보며 사회사업을 전개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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