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200만원 상당의 50년산 로열살루트 위스키 한 병, 한 병에 150만원하는 루이13세 코냑 3병, 150만원 상당의 38년산 로열살루트 위스키 한 병, 8천만원 상당의 달러와 엔화"
이대엽 전 성남시장 일가와 성남시청 공무원 등 28명을 성남시청 비리와 관련해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이 전시장의 집에서 압수한 '비리백화점'의 목록이다.
검찰은 이대엽 전 성남시장 재직시절의 비리와 관련해 이 전 시장을 비롯해 13명을 구속 기소하고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밝힌 이들의 범죄 사실은 이 전 시장 재임 8년 동안 그와 친척들이 건설업자 및 공무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총 15억여원을 챙겼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건설업자들에게 불법적으로 이권을 주고 금품을 받았다.
이 전 시장 주변 인물이 공무원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뇌물을 챙겼다.
여기에 시장의 친인척, 공무원들이 합세했다. 이들은 성남시의 각종 사업과 인사에서 금품을 챙긴것이다. 그들이 주고 받았다는 뇌물의 액수가 제법 크다.
자세히 보면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 관련 비리 사건 때마다 나왔던 유형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수법들이다. 이런 비리가 8년 동안 지속됐는데도 시의회나 자체 감사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구속된 이 전 시장의 집에서 나왔다는 1천200만원 상당의 위스키와 150만원 상당의 코냑, 외화를 비롯한 8천만원 상당의 현금 다발 등을 보면 마치 호화주택 털이범으로부터 압수한 장물을 보는 느낌이다.
이 외에 포장된 고급 넥타이 300여개와 명품 핸드백 30여개도 발견됐다고 한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성남시청의 비리는 시장과 그의 친인척, 공무원, 건설업자 등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비리를 총 망라한 '비리 종합판'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를 믿고 시장으로 뽑아줬던 성남 시민들의 실망이나 배신감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좌절감을 느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비리는 올해 들어서도 처음이 아니다. 12억원대의 아파트와 3억원대의 별장을 뇌물로 받았다가 구속된 군수가 있었는가 하면 비리 연루 사실이 밝혀져 이임식도 못하고 도망간 시장도 있었다.
민선 3, 4기 자치단체장의 38.3%가 기소돼 이중 34.0%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 자치단체장들은 지역의 '소(小)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권한이 막강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리가 건설 등 공사와 관련된 이권, 인사문제 등 일정 권한이 있어야 하는 분야에서 나온다. 특히 이를 견제하거나 감시할 시스템이 안 돼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자체의 회계책임자와 감사관을 모두 단체장이 임명하는 현행 제도로는 비리를 막기 힘들다. 회계책임자를 의회 동의를 거쳐 임명해 부당한 지출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감사 기능을 의회에 주든가 독립시켜야 비리의 일부라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인사 문제는 인사위원회 구성 및 운영방식을 바꿔 독립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지방의회가 단체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현재처럼 지역성 있는 정당들이 특정 지방의회를 장악해 단체장과 한 통속이 되거나 반대로 사사건건 반대하는 행태가 돼서는 지방행정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지방선거에서 당분간 정당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여기에는 이런 단체장을 뽑은 주민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건설 공사나 인사와 관련해 비리를 저질러도 많은 주민들은 '내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게 실상이다.
대부분 유권자들의 관심은 교육과 치안 같은 자치권한 밖의 일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단체장들이 유권자인 주민들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결국 주민 무관심 지방자치가 비리 단체장을 낳고 있는 셈이다.
항상 하는 얘기다. 정당이나 이름만 보고 단체장을 뽑을 것이 아니다. 일 잘할 만한 사람을 선출하자.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보자. 감시하는 유권자의 의무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